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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TV드라마가 한창이다. ‘주몽’, ‘연개소문’, ‘대조영’이 경쟁적으로 방영되고 있다. 그 가운데 이제 막 막이 내린 ‘주몽’의 인기는 하늘을 치솟았다. 우리 국민들의 의식이 그동안 아득하게 느껴졌던 대륙 왕조 고구려로 확대되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일 것이다.
나는 일찍이 우리 민족의 역사가 새로운 확대의 길에 들어섰다고 말한 바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대륙을 호령하던 고조선, 부여, 고구려, 신라, 백제, 발해, 통일신라의 고대 역사는 확대의 역사였다. 그 뒤를 이은 고려와 조선 천년의 역사는 영토가 반도로 위축된 축소의 역사였다.
이제 21세기, 새로운 천년의 역사가 시작되는 아침을 맞는다. 이 아침의 의미는 무엇일까. 나는 감히 말한다. 우리 민족의 의식을 반도에 가둬 두었던 커튼이 걷히고 역사의 태양이 잊혀진 지평을 밝혀주는 아침이다.
그러므로 드라마 ‘주몽’이 우리 국민의 의식을 확대시킨 것이 아니라, 확대되는 우리 민족의 역사의식이 드라마 ‘주몽’을 만들고 시청률 1위를 기록케 하였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앞으로 짧아도 천년 동안 우리 민족이 확대의 역사를 창조해 나갈 것으로 나는 믿는다. 그것이 역사의 섭리이다. 물론 과거처럼 군사력으로 남의 나라 영토를 침략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경제와 문화의 부드러운 힘으로 우리의 활동영역을 넓혀나갈 것이다. 다른 나라를 고통에 빠트리고 우리의 이익만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키워나간다. 이것이 우리가 개척할 확대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드라마 ‘주몽’을 보며 동북아 대륙을 우리의 영토로 수복해야겠다고 다짐할 필요는 없다. 또 지난 천년간 이어진 축소의 역사를 원망하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지금 다시 확대의 역사를 창조하는 출발선에 서 있으며 ‘주몽’은 이 출발을 축하하는 하나의 의식(儀式)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고 있는 간도(間島)는 별개의 문제이다. 간도는 명백히 조선(朝鮮)의 영토였다. 백두산 정계비의 토문강(土門江)은 두만강이 아니라 송화강 상류 북간도의 경계에 있는 강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두만강인가, 송화강 지류인가를 놓고 조선과 청(淸)나라 사이에 분쟁이 계속되는 가운데 조선은 1905년 외교권을 일제에 강탈당하게 된다. 그리고 1909년 일제는 간도를 청의 영토로 귀속시켜버렸다. 바로 ‘간도협약’이 그것이다.
그러나 간도협약은 국제법상 원천무효이다. 조선의 외교권 침탈과 영토의 강제할양은 바로 일본 제국주의 침략의 일환이었고, 그러한 침략은 인류 양심으로 용인될 수 없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과 뒤를 이은 중국이 불법적인 간도협약을 근거로 실효적 지배를 계속하고 있다 하더라도 간도에 대한 우리의 영유권은 소멸될 수 없다.
중국이 최근 이른바 동북공정을 통하여 우리 고대사를 자기들 역사에 편입시키고 백두산에 대한 연고권을 강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바로 이 간도에 대한 우리의 영유권 주장을 사전에 봉쇄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역사라는 것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무슨 공정(工程)을 통해 재창조될 수 있는 대상인가. 중국의 그러한 기도는 역사의 왜곡으로서 역사를 모독하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또 그렇게 한다고 하여 우리의 영토인 간도가 합법적으로 그들의 영토가 되는 것도 아니다.
어찌되었건 2년이 지나면 중국이 간도를 지배하는 기간이 100년을 채운다. 그동안 우리는 식민지배, 분단, 전쟁을 거치면서 이 문제를 정식으로 제기하지 못하였다. 이제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라의 의지를 분명하게 밝히고 중국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에 나서야 한다. 국제사회에 대하여도 우리의 정당한 주장을 널리 알리고 협력을 구해야 할 것이다.
보도를 보니 노 정권이 남북정상회담을 서두르는 모양이다. 전 총리가 갑자기 평양을 방문하고 또 미국과 북한이 제법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협상을 진행시키고 있다. 과연 북한이 핵을 깨끗이 포기하고 미국과의 수교에 나설 수 있을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나는 일관되게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할 때 미국과 수교하는 것을 지지하였고, 또 민족의 장래와 국가의 이익 그리고 한반도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조건 없는 남북정상회담을 지지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한나라당은 대선가도에 악영향이 있을 것을 우려해 무조건 정상회담을 반대하고 나서지만 이는 잘못된 행태이다. 노 정권이 정상회담을 통해 대선정국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더라도 이는 오산(誤算)에 그칠 것이다. 나는 지난 2000년에도 정상회담 발표가 총선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한 사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지금 상황에서 노 정권이 정상회담을 대선에 악용하려 한다면 국민이 이를 용서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북한이 정상회담에 응한다 하더라도 나는 노 정권이 얼마나 민족의 장래와 나라의 이익을 위해 진지하게 회담을 이끌 것인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래서 세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하나는 북한에 대해 절대 핵을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확인시키는 것이고, 둘은 인류보편의 가치인 인권을 북한이 수용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언제까지 이산가족, 전쟁포로, 납북자와 탈북자 문제를 공전(空轉)시키고 있을 것인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중국의 역사침략과 간도문제에 대한 공동대응을 합의하는 일이다. 우리의 대응도 시원치 않았지만 북한의 침묵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입만 열면 자주를 외치는 평양이 왜 이 문제를 놓고는 한마디도 말하지 않을까. 남북의 정상이 만나면 이 민족의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하고 공동대응의 길을 열어야 할 것이다.
우리 국민의 가슴에 감동의 물결을 일으킨 드라마 ‘주몽’은 끝났지만, 우리 민족이 앞으로 펼쳐나갈 역사의 드라마는 이제 막이 올랐을 뿐이다. ‘주몽’과 함께 위대한 고구려의 탄생을 위해 기도했던 우리 국민들은 이제 우리가 창조할 새 역사의 지평을 응시하고 있다.
지식의 경쟁력으로 강한 경제를 이루고 탁월한 문화의 힘으로 인류사회를 이끄는 나라, 그리하여 비록 영토는 한반도에 머물지 모르나 우리 민족의 활동영역이 세계를 주름잡는 시대, 그것이 바로 우리가 개척해야 할 미래일 것이다.
2007. 0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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