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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줄기를 휘돌아 하늘을 비호하는 천호산 줄기의 자락을 끝으로 맑은 바람 솔향기가 코끝 진하게 우려되는 조그만 시골마을은 다름 아닌 논산시 연산면 고정리 마을이다.
특히 이 마을은 우리나라 예학의 거두 사계 김장생 선생님이 묻혀 있고 이조 3백년의 유교문화와 정신적 지주의 터인 광산김씨의 제실이 있어 우리의 것을 지키고 보존하려는 광산김씨의 문중노력 또한 열열한 곳이다.
이러한 선친의 업을 안고 이어가는 고정리 마을에 어머니 살아생전에 못다 한 효를 원망하며 살아가는 효자가 있으니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민성원 타조랜드”의 김성수(55세)사장이다.
일찍이 미국에서 무역업을 2십여년 한 그가 논산시 연산면으로 돌아온 배경은 다름 아닌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어머니 김민동씨의 죽음이 김성수 사장을 고향으로 돌아오게 한 발걸음이 되었다.
타계하신 김민동 모친은 박정희 대통령시절 육영수여사와 구국선교단 부총재를 지낸 거목이며 군대 교회를 연 창시자로 유명하다.
이러한 믿음의 바탕에는 언제나 신실함과 근면을 삶의 체온으로 돌 같은 신앙이 옆에서 숨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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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모친의 영향을 받으며 커온 김성수 사장은 무역 비즈니스 사업을 위해 한국과 미국을 종행무진하며 비행기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콩팥에 무리가 오는 고난을 격어야 했다.
1996년 미국병원에서 이식수술을 안 할 경우 3~5년을 살 수 밖에 없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김성수 사장은 수술을 하고 싶었지만 모친의 가르침에 “나 살려고 남의 신체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믿음을 키워 오면서 자연치료에 온힘을 기울인 결과 이제는 정상인과 같은 평온의 안식을 얻게 되었다.
이에 힘입어 15년전 미국에서 생활시 소의 광우병 파동이 전 세계를 물결치면서 미국은 자국 나름대로 대체고기를 찾기 시작할 때 타조를 사육하는 것을 보고 큰 감명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우기와 눈이 내리는 시기가 짧은 한국여건에 잘 맞을 거라는 생각과 타조를 이용한 다양한 제품개발에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한 김경옥씨(부인)는 타조알 공예를 미국등 유명 강사를 통해서 지식과 기술을 전수하기에 이르렀다.
마침내 모친의 노환이 지속되면서 1999년 12월 어머니가 소천하자 김성수 사장은 고향으로 내려와 풀, 잡초를 뜯으며 3년간의 시묘살이를 시작했고 어머니의 땀이 밴 고향의 향기를 쓸고 닦으면서 집을 건축하고 타조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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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장은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타조 8십 마리를 시작으로 지금은 1백 3십여 마리로 확장하게 되었다.
주위에서 타조가 고가인데 너무 많은 수를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들었지만 김사장은 적어도 500마리이상은 가져야 된다는 생각을 했다.
김사장은 처음이라서 논산에서는 타조를 사육하는 농가가 적어 논산시농업기술센터에서 추진하는 친환경 미생물배양균을 가지고 타조에 접목을 시도했다.
그 결과 환경이 되살아나면서 파리와 모기가 없어지고 주변 환경이 맑아지는 것과 소화가 잘되는 이점이 너무 많아 금요일만 되면 농업기술센터를 찾는 매니아가 되었다.
타조는 종타(수정용, 씨타조) 선택이 중요한데 많은 사람들은 욕심을 부려 실패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이를 안타깝게 생각한 김사장은 직접 수입국에서 사육한 건강한 종타를 들여와 사육한 결과 실패율을 최소화 하는데 성공했다.
지금 확보한 종타만 3십5마리이며 식육용뿐만 아니라 기능성 화장품(크림과 연고) 개발에 연구를 매진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유일하게 처음 시도되는 일이라 연구에 몰두하고 있지만 열악한 연구 환경에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했다.
그러나 이에 굴하지 않고 부인과 함께 타조알 공예체험과 기능성 보조식품등을 제조할 수 있는 체험장도 조성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김성수 사장은 지금까지의 관행인 엑기스 판매등 소비자를 우롱하는 사태가 많다며 이런 행위에 대해서 일침으로 경고하는 말이 재미있다.
“이 세상에 일확천금은 없습니다, 농업은 정직해야 하며 고부가치의 실현은 도전입니다” “도전 뒤에는 땀과 지켜보는 이웃이 있기 때문에 행복 합니다.”활짝 웃는 모습이 천진난만하다.
김사장은 이제부터 바쁘다. 돌아가신 모친의 삶을 재현할 기념관 건립과 타조농장의 확대등 산적한 일이 부지기수 이지만 소박한 웃음 뒤에 삶의 무게만큼 영근 햇살이 따듯한 웃음이 있어 넉넉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