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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충남지사가 해외 투자유치에서 경제 CEO로서의 역량을 발휘, 관심을 모은다. 지난해 9월 8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근교의 ASM사. 당시 취임 후 두 달 만에 해외 투자유치에 나선 이완구 충남지사는 2000만달러의 투자를 이끌어 내기 위해 ASM사를 찾았다. 그러나 상황은 투자유치를 가늠하기도 어려운 여건이었다.
그동안 ASM은 충남도에 투자 의향을 강하게 밝혀왔지만 뒤늦게 타 자치단체가 유치 경쟁에 뛰어들면서 이날 오전까지도 투자 여부를 결정하지 못한 상태였다. 게다가 이날 ASM은 그동안 협상과정에서 제시하지 았았던 10억원 규모의 클린룸 설치를 사전 예고도 없이 투자 조건으로 제시, 충남도를 더욱 난감하게 만들었다. 승부수를 띄운 쪽은 충남도였다.
이완구 지사는 통역을 물린 채 담판에 나섰다. 아서델 프라도 사장에게 클린룸은 설치해 줄 수 없으며 이번 협상이 결렬되면 다른 기업이 입주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배수진을 쳤다. 결국 한국 내 투자의 전략적 중요성을 절감하고 있던 프라도 사장은 경쟁관계의 타 자치단체를 제치고 충남도의 손을 맞잡았다.
10개월 후인 9일 오후(한국 시각) 이번에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SEPSA 본사. 스페인 제2의 석유화학그룹인 SEPSA는 현대오일뱅크와 함께 총 11억달러 규모의 BTX 생산 라인을 서산 대산석유화학단지에 조성키로 하고 이날 투자협정(MOU)을 체결했다.
이날 MOU는 스페인 글로벌 기업의 한국 내 첫 투자라는 점에서 역사적 사건. 그러나 값진 쾌거보다 더 중요한 점은 향후 2년여 간의 성공적인 사업 추진을 위해 SEPSA의 CEO 및 임원들로부터 굳건한 신뢰감을 얻어내는 일이었다. MOU 체결, 오찬 등 3시간동안 진행된 행사는 이완구 지사의 독무대였다. 스페인 산자부장관을 두 번이나 지낸 카를로스 페레츠 SEPSA 회장과의 단독 면담에선 못피우는 시가를 입에 물었다.
MOU 체결식에선 카를로스 회장이 먼저 인사말을 한 뒤 곧바로 서명에 들어가려고 하자 "결례가 안된다면 나도 한마디 하겠다”며 유창한 영어로 좌중을 압도했다. 때로 밀고 때론 당기며 상대를 적절히 치켜 세우고 웃기는 동안 SEPSA 관계자들은 이 지사에게 하나 둘씩 매료돼 갔다.
SEPSA의 파트너인 현대오일뱅크의 서영태 사장, 이춘선 주 스페인 대사 등이 혀를 내두를 정도. 마침내 모든 일정이 끝나고 충남도 관계자들을 배웅하는 시간. 11억달러의 투자 결정 과정에서 단 한 차례도 한국에 오지 않았던 80세의 노련한 글로벌 CEO, 카를로스 회장은 미소를 지으며 이완구 지사에게 말했다. “10월에 당신과 충남을 만나러 한국에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