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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남편이 점점 아파가요. 정말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삶이 더 힘들어져요.”
16년째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있는 남편에 중학생 딸, 팔순을 넘긴 시어머니, 그리고 본인까지 이렇게 4명의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결혼이주여성이 있다.
주인공은 서산시 대산읍 화곡리에 사는 필리핀 출신의 산토스 재클린멘도자(44)씨.
산토스씨는 지난 1995년 코리안 드림을 안고 국제결혼을 통해 남편 김강호(50)씨를 만나 사고무친의 우리나라에 첫발을 디뎠다.
결혼 이듬해인 1996년 여름, 남편 김씨는 조개를 잘못 먹고 비브리오 패혈증에 걸려서 세 번에 걸친 큰 수술 끝에 두 다리를 절단했다.
“결혼한 지 1년 만에 그런 일이 생기고 나니 정말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았어요. 앞날이 깜깜하고 살아갈 일이 막막했어요.”라며 산토스씨는 그 당시를 회고한다.
그러나 산토스씨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상처치유와 재활치료를 도왔다. 1년이 넘는 노력 끝에 남편 김씨는 의족에 의지해 다시 걸을 수 있게 되었다.
뻔한 살림에 가족의 건강마저 좋지 않은 상태에서 몇 푼 안 되는 정부지원금으로 생계를 꾸려야 하는 고단한 한국생활이 시작됐다.
다리가 없는 남편과 관절염이 심한 시어머니는 거동조차 힘들었고 그 와중에 새로운 식구로 딸아이가 태어났다.
산토스씨는 낙담하지 않았다. 인근에 있는 보습학원과 유치원, 주민자치센터 등에서 영어 원어민교사로 일하며 틈틈이 집안일도 하고 농사일을 도맡았다.
아내이자 며느리로 어머니이자 선생님으로 그리고 남편의 손과 발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만큼 바쁘고 힘겨운 생활이었지만 그녀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나 어둠의 그림자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9년 남편 김씨가 뇌졸중으로 쓰러져 아예 병석에 누워버렸다. 이어 2010년에 뇌졸중이 심해지면서 전신마비 증세와 함께 뇌병변 1급 장애까지 받았다. 말 그대로 꼼짝도 못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남편의 병수발을 위해 그나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둬야만 했다. 가족의 생계가 막막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길게 엄습했다.
산토스씨는 포기를 모른다. 남편의 굳어가는 몸을 주무르고 또 주무른다. 하루에도 여러 번 남편의 대소변을 받아내고 끼니때마다 시어머니에 정성으로 밥상을 올린다.
마을사람들은 “산토스는 비록 외국에서 시집왔다고는 하지만 웃어른 공경할 줄 알고 시어머니 봉양할 줄 아는 천생 우리나라 사람”이라며 “너무도 절망적이고 힘든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힘든 내색없이 가장 노릇을 하는 그녀를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짠하다.”고 말한다.
“요즘같은 장마철이면 남편은 잘려나간 다리가 아파서 밤새 잠을 못자고 끙끙 앓아요. 밥도 먹여주고 억지로라도 웃음을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이젠 많이 힘들어요.”라고 말한다.
산토스씨 가족은 현재 기초생활수급자로 책정되어 월 90여만원의 생계급여와 남편 김씨 명목의 장애연금 16만원 등 모두 100여만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부족하기는 하지만 아껴서 쓰면 그런대로 근근이 살아갈 만 해요. 다만 한 달에 2번 정도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남편을 데리고 정기검진을 받으러 가는데 택시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많이 부담스러워요.”라고 말한다.
산토스씨는 “그래도 중학교에 다니는 우리 딸 은정이가 공부도 잘하고 티 없이 맑고 밝게 잘 자라줘서 얼마나 대견한지 몰라요.”라며 “주위에서 많이들 알아보시고 도와주시려고 하는 분들이 많아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다시 웃음을 찾는다.
산토스씨는 24일 ‘제9회 서산시민체육대회’ 개막식행사에서 있었던 ‘제17회 서산시민대상’ 시상식에서 시민대상(효행 및 선행 부문)을 단독 수상했다.
서용제 시장권한대행은 “다문화가정 여성으로 언어·문화적 차이와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불구하고 강한 생활력과 밝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효행과 선행을 몸소 실천하는 산토스씨야 말로 서산시민대상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