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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강산이 3번 변할 세월을 오직 어린이들과 함께한 장애인이 있다.
봄비가 촉촉이 내리던 3월 마지막 날. 궂은 날씨에 ‘오뚝이 삼촌’ 신석현(46.홍성군 갈산면 취생리)씨를 찾았다.
충남 서산시 고북면 기포리와 가구리를 가르는 국도29호선 고북농협 주유소 앞 횡단보도에서는 ‘오늘 같이 궂은 날씨에도 과연 나와 있을까…’라는 생각을 달아나버리게 하는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관 복장에 긴 우의를 걸친 신씨가 마치 영화 「메트릭스」의 주인공이 총알을 피해 몸을 유연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동작으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그의 별명이 ‘우리 삼촌’이나 ‘경비 삼촌’에서 ‘오뚝이 삼촌’으로 바뀌었다고.
그의 손짓 발짓 호각에 따라 차량과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신씨는 정신지체를 가진 장애인이다. 그런 그가 고북초등학교 앞에서 교통지도를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14년 전쯤인 1996년 초부터다.
당시 신씨는 지금 교통정리를 하고 있는 자리에서 초등학생 2명이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는 장면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 후로 그는 매일같이 등하교시간 어린이 안전지킴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아이들이 등교하기 전인 오전 8시쯤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 도착해 등교하는 어린이들의 교통지도를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아이들이 수업하는 동안에는 학교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쓰레기를 줍고 풀도 뽑고 신발 정리도 한다. 아이들과 함께 학교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는 다시 아이들의 안전한 하굣길을 돕는다.
사실 신씨가 고북초등학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30년 전쯤이다. 장애를 갖고 있어 학교를 제대로 다니지 못한 신씨는 동생들을 따라 처음 이곳에 발을 들여 놓았다. 동생들이 수업하는 동안 신씨는 쓰레기를 줍고 운동장의 돌을 골라내고 잔디밭의 풀을 뽑았다. 누가 시킨 것이 아니라 동생들 수업 끝날 때까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터득한 그만의 소일거리였다.
처음에는 거리를 두며 멀리 하던 아이들도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면서 신씨와 가까워졌고 학교 아이들 모두가 신씨와 친구가 됐다. 그러다가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었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이정주 고북면장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아이들의 등하굣길을 지켜주고 있어서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지 모른다.”며 “신씨가 이곳에서 교통정리를 한 이후로는 교통사고가 거의 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남 3녀 중 막내인 신씨는 태어날 때부터 정신박약 증세를 가지고 태어났다. 10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고 현재는 서산시 고북면에 인접한 홍성군 갈산면 취생리에서 어머니 이철순(82)씨와 단둘이 정부보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신씨는 “신호에 따라 움직여주는 운전자들이 대부분이지만 가끔 무시하고 그냥 가거나 욕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도 있어요. 그럴 때면 속상한 건 둘째 치고 위험한 상황이 발생하기 일쑤”라며 “힘이 닿는 날까지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있을 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신씨는 2004년 전국 초등학생들이 뽑은 ‘제1회 어린이들이 고마운 어른께 드리는 밝은 햇살상’을 받기도 했고 모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