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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의 길은 외롭다!
  • 기사등록 2007-03-25 09:2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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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 전경기지사의 거취문제로 세상이 시끄럽다. 그를 마지막으로 언제 만났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언론을 통해 그의 대권행보를 지켜보았다.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도 있어 침묵이 미덕이라는 생각으로 언론 접촉을 거절하였다.

그런데 그의 결단에 대하여 돌을 던지는 많은 사람들이 나를 걸고 들어간다. 그나 나나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가혹한 비판과 비난에 직면하는 것은 어쩌면 숙명일지 모른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나 자신이나 그를 옹호 또는 변명할 생각이 별로 없다. 다만 나의 관점(觀點)과 진실을 말해보려 한다.

나는 1997년 신한국당 경선에 참여하여 완주(完走)했다. 그러나 그가 결단을 내린 시점은 경선을 시작하기도 전이다. 나는 경선 전후를 불문하고 경선 방식이나 룰에 관하여 시비를 걸어 본 일이 없다. 그러나 그는 경선의 시기나 방식에 관하여 당내에서 투쟁을 하였다. 또 나는 경선 전 국민 지지에 있어서 이미 경쟁자를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앞서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국민 지지가 저조한 상태에서 결행하였다.

결단의 동기나 목적도 같지 않다.

나는 그 당시 세대교체를 통한 젊고 역동적인 리더십의 창출이 시대의 소명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지역패권과 기득권으로 무장한 당내 낡은 세력 때문에 나는 후보경선에서 실패하였다. 나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고 경선 결과를 깨끗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미련 없이 지사의 일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 뒤 경천동지(驚天動地)할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55%를 치솟던 당 공식 후보의 지지가 두 아들 병역문제로 한 자리 숫자로 떨어진 것이다. 그 상황이 두 달, 세 달이 가도 변하지 않았다.

당 공식 후보에 등을 돌린 민심은 다시 세대교체 열망으로 나의 출마를 요구하였다. 나는 그 요구를 외면할 수 없었다. 긴 고뇌 끝에 오직 위대한 국민의 마음에 의지하고 외로운 항해를 하기로 결심하였다. 11월 초 나에 대한 국민 지지가 다시 선두로 나섰다. 이에 놀란 양 진영이 내가 당시 김영삼 대통령으로부터 200억원을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였다. 나라의 모든 매체들이 나에게는 단 한마디 확인도 없이 일주일 동안 이 새빨간 거짓말을 대대적으로 보도하였다. 나의 지지는 일주일 만에 반 토막이 되었고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이렇게 나는 국민의 세대교체 열망에 부응하여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 위해 결단하였다. 그러나 그는 어떤 국민의 요구를 받았는지 분명하지 않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낡은 수구세력이나 무능한 진보세력의 길이 아닌 새로운 세력의 형성이 시대의 요청이라고 판단하고 이를 따르기 위해 결단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나는 그의 결단을 예상하지 못하였다. 그는 국민지지 이상으로 언론으로부터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레이스를 펼치고 있었다. 아직 국민 지지를 끌어올릴 시간도 많이 남아있었다. 현재로서는 한나라당의 집권이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그가 당을 떠나는 결단을 하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하였다.

손 전지사의 결단을 비난하는 사람들이 ‘이인제 학습효과’라는 말을 상투적으로 갖다 붙인다. 읽어보면 쓰는 사람마다 의미가 다르다. 나의 기억에 의하면 이 용어를 만든 사람이 바로 지금 한나라당 대표로 있는 분이다. 그가 97년 대선 직후 당의 대변인으로 있으면서 대선 패배 책임을 나에게 전가하기 위해 만든 말이었다.

사실 나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이번 손 전지사의 결단을 놓고 무슨 교수나 저널리스트까지 분별없이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교수나 저널리스트는 지성을 상징하는 분들이니 말이다.

우선 정치의 장(場)에서 ‘학습’이라는 말은 쓰지 않는다. 다만 계급독재를 하는 공산주의 사회에서 대중을 이념적으로 무장시키기 위해 이 용어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나라당 대표가 무슨 공산주의자도 아닐 텐데 참으로 엉뚱한 용어를 가져다 쓴 것이다.

1997년 나는 물론 대통령에 당선되어 세대교체를 실현하고 낡은 지역구도를 허물어 정치의 명예혁명을 이루고자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시대의 소명을 받들지 못한 데 대하여 나는 무한의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그러나 내가 한나라당에 대하여 져야할 어떤 책임이 있단 말인가. ‘이인제 학습효과’란 나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만든 말인 것 같은데 참으로 어이가 없다.

1997년의 선택은 국민의 선택이지 나의 선택이 아니다. 국민이 김대중 정권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므로 한나라당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원망하던지 국민을 원망하여야 하는데, 엉뚱하게도 나에 대한 저주를 멈추지 않는다. 나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국민의 지지를 지켜낼 현실적인 힘이 없었다. 그 결과 국민은 세대교체가 아니라 정권교체를 선택한 것이다.

우리 정치 역사에서 평화적인 정권교체는 1997년 처음으로 이루어졌고 아직도 두 번째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평화적 정권교체야 말로 민주정치의 꽃임을 누가 부정할 것인가. 나의 독자출마라는 결단이 이 평화적 정권교체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면 이는 역사의 섭리이지 나의 의도는 아니었다. 아무튼 1997년은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놀라운 성취가 이루어진 해이다.

‘이인제 학습효과’라는 말을 만든 사람은 내가 민주주의를 파괴한 사람이라고 선전해 왔다. 그러나 큰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나의 결단은 평화적 정권교체라는 민주주의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되었다. 아직도 한나라당이나 권위주의 기득권 논리에 젖어있는 분들에게 물어보자. 1997년 당시 호남 사람들이 지지하는 당이나 인물이 절대로 정권을 잡으면 안 되는 이유가 있었는가를. 오히려 특정 지역패권 세력이나 낡은 기득권세력이 계속 집권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손 전 지사는 현재의 한나라당이 군정의 잔당들과 개발독재시대의 잔재들이 버젓이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언론의 논조(論調)를 보면 그는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한마디로 일축할 뿐, 과연 사실이 그러한지 언급하지 않는다. 지금 한나라당 대표는 1980년 신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광주에서 시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할 때 그 전위세력을 자처하고 나선 사람이다. 그가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사람으로 변신하기 위해 언제 뼈를 깎는 자기 성찰의 세례(洗禮)의식을 치렀는지 기억이 없다. 그저 편하게 지역패권에 기대오지 않았는가. 이런 사람이 민주주의를 내세워 남을 공격하니 할 말이 없다.

나는 솔직히 말해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떠나 어디로 갈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의 말대로 한국정치의 낡은 틀을 깨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 어려운 결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10년 전 나에게는 조직, 지역, 돈, 권력 어느 것도 없었다. 지금의 그에게도 현실적으로 힘이 될만한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10년 전의 나나, 지금의 그나, 오직 국민의 의지에 기댈 뿐 돈, 지역패권 또는 권력을 가지고 나라를 어지럽힐 아무런 힘이 없다.

그는 오직 시대가 그에게 요구하는 명분, 눈에 보이지 않는 대의(大義)를 위해 절벽 위에서 민심의 바다를 향해 몸을 던졌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의리(義理), 말 바꾸기 등의 논리로 그를 비난한다. 그러면서 그가 주장하는 시대의 명분이나 대의에 관하여는 침묵한다. 이제 그는 그 비난과 침묵의 무게를 견디면서 없는 길을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개척자의 길은 외롭다. 하지만 불굴의 용기와 신념이 있는 한 길은 열리게 마련이다. 그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2007. 03. 21 이 인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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